'너도 참 힘들었구나'
함께하기를 십여 년인가
더 되었는가
늘 옆에서 아쉬움을 곧바로 해결해주었던
30미터 줄자가
이젠 저도 힘에 부치는지
떠날 것을 알려왔습니다.
이집 저집 시골로 시내로
여러곳으로 추우나 더우나
짜증 한번 안내고 동고동락한 사이인데
이렇게 갑자기 보낼려니 참...
밤낮이 근무 교대한다는 날
하필이면 하늘도 무겁고
땅도 고요한 이런 날 너를 대하고보니
그간 참 무심도 하였나보다.
우리가 만나고 함께한 날들에서
형편이 없어서 너무나도 형편이 없어서
감히 집을 고치겠다는 엄두조차 내질 못하시던 어느 댁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이 떠오르는구나.
연세 70을 훌쩍 넘기시고도 윗대 조상님들 제사를 받드는 맏종부이시라 바깥어른께서는 거동이 힘드신 연세시고
아드님 두 분이 있다고 하셨으나
큰아드님은 신체가 불편하여 마땅한 수입이 없어 경제적 여건이 열악하여서
둘째는 맏벌이 가정이라 주야간 근무에 임하시느라
그 고령의 연세에도 재래식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서 음식을 장만하시고 내려앉을 듯 위태로운 지붕을 떠받드는 가늘고 굽은 기둥에 걸친 마루 한켠에서 가스레인지에
시커멓게 그을린 오래된 프라이팬으로 생선을 구우시는데
눈도 침침하시고 불빛도 아주 낡은 백열등이 고작이라
집을 좀 손봐주겠능게 하시는 말씀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옛날 참 오래된 3칸 초가집 구조에
스레이트를 얹었을 뿐
그 어디 손을 보거나 치장을 바꾼 흔적도 없 이
철사줄을 걸고 종이를 이어붙여 천정을 마감한 이후로 찌들고 물들고 쥐가 들락날락하며 분비물들을 쏟아낸 흔적들,
그 아래로 먼지가 자욱한 옛 어르신의 환갑잔치와 혼사 사진이 희미한 회색빛으로 덧없는 세월을 드러내고 있고
갖가지 문서며 학창시절을 보낸 교과서들과
벽에 새겨진 이름과 희미하게 보이는 수업시간표,
윗채가 이러하고
아랫채는 단칸방과 곳간 헛간으로 된
3칸짜리 초가집 형태에 지붕만 역시 스레이트로 갈아 시커멓게 그을린 서까래며 흙벽이 처지고 갈라지고
기울어져 자칫 위험스럽기까지 한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내일 밝을 때 한분 더 찾아뵙겠습니더~
앞에서 뒤에서
불때는 부엌이며 방 안에 까지
그을리고 흙이 떨어져내린 서까래와 속에 보이는 솔가지들은 벌레가 파먹을대로 파먹어

허연 찌꺼기들만 떨어져내리고 너덜거리는 흙벽과 삐걱거리는 마루...
어느 것 하나 연로하신 두 분의 남은 여생을 안전하고 평안히 지탱해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으니 더 눈앞이 캄캄해져 왔습니다.
모친예~
얼마나 생각하고 계신데예~
내가 이나이 대도로기 애끼고 숭캐고
영감도 술자신다꼬 맨날 돈내나라
큰아들도 몸이 저러이
그래서 내가 몬징기고 이우지에 매끼농기
얼매 대는데
그거로 대겠능교
마 잘 할라카지말고 고만침만...
지발하고 뜨신물 나오고 불 좀 환하구로만...
예...
함 해보끼예~
내사 허리도 아푸고
깨밭에도 날수굼 가야대이
짐도 하나 몬거덨꾸메
밥도 몬해디리고...
예...
제가 알아서 할테이끼네예
아무 걱정 안하시도 되겠습니더~
그래놓고는 임시로 거처하실 아랫방과 곳간으로 짐들을 옮겨드리고
처마 밑에 임시로 음식하실 자릴 봐 드리고
하는데
고운 옷가지를 보시고는
이거 내 시집올 때 가지고 왔는데
참 곱제요~
이거는 우리 아부님께서 애끼시던 물건인데...
눈물이 나능구메~
이거는 지기들인데 시집오이 우리 웃대
시어른께서 꿈에 지보고 지삿장을 보라카시더구메
그 말쑴 듣고는 핑생 넘 안맺끼고 내가 말카 해가 모시디맀다아잉게...
어르신 두분 바깥으로 나가시고는
중장비를 들여 윗채를 모두 부셔서
땔감이 되는 목재와 폐기물을 분리하여
처리하고는
마루 높이 만큼이나 터를 다듬어
줄자로 길이와 폭 방향을 설정하여
기초를 놓을 작업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때 오늘 눈물을 보이는 30미터 줄자가
꼭 함께 손을 맞추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제 친구이자 주인이
수리가 아니라 형편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콘크리트스래브 신축공사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음을 눈치 챘는지
저도 신나게 이리가고 저리가고 순조롭게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달하고도 보름 정도가 지나니
또 조상님 기일제가 다가온다셨으니
마감작업을 서두르고
보편적으로 마무리 입주준비에 해당하는
도배와 장판시공,주방가구(씽크),전등기구는
건축주(입주자) 부담이나
그러실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을 이미 알고있었던 터라
일사천리로 모두 제작 시공을 주문해서
기일에 염려하시지 않도록 완공을 해드렸고
가족분들께서 그 날에 맞춰 오셨는데,
거실과 함께 주방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안방이 크게 자릴하고 있었으며
현관을 마주보고는 현대식 욕실이 있는 구조로
정면 외벽엔 자기질 타일에 메지시공까지 마친 신축주택을 접하시고는
놀랍고 즐거우신 표정들로 가득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일이 모두 끝나고 모친께서
매일같이 새벽녘에 깨밭으로 향하셔서
종일 일을 하시고 일당으로 받으신
꾸깃꾸깃 얼마를 쥐어주시며
양반요~
내가 생각어도 기가 맥히지마는
좋아서 잠도 안오는데
다리가 우째 그러치 짓고 해다 였나꼬
물어보샀킬래
말카 그양반 알아서 다 했지
내는 모린다 안캤능게~
손해 마이 났제요~
내 핑사 안이자뿌끼이꺼네
이거마 받아여주소~
예~고맙습니더...
뒷날 마을 대표님을 찾아뵙고
제가 일하느라 먼지도 나고
좀 소란스러우셨지예~
늘 모이시는 회관에서
마을 분들 점심식사라도 함 드시면
좋겠습니더~하고
부탁말씀과 그 귀한 돈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러고 십수 년이 흐른 지난해
농원 개원식에 그 마을 주민일동으로
금일봉과 단체로 걸음해주셔서
놀랍고 고마운 맘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와의 이런 일이 있을려고 그랬는지
그저께는 이웃분께 부탁하셔서
화장실 문이 열리질 않는다고
좀 봐달라시는 전화를 받아
곧바로 내려갔더니 어쩌다 그렇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안쪽의 잠금장치가 작동한 상태라
잠겨져 있어서 손쉽게 해결해드렸더니
주머니를 만지작거리시다
5만원권 지폐를 꺼내시고는
이거라도 출장비하소~
내 돈 있구메~
내하고 우리 큰아 죽고엄지마는...
연금하고 한달에 한 50만원 나오구메~
그거로 내 혼차는 실컨 산다아잉교...
예 어르신
마음만 받겠습니더~
우야든동 건강하시이소~
그라제요~
내사 인자 일도 안가이 머...
잘 가소~
참 곱다~
안직 새실랑이다~
예...
말씀 고맙습니더~
그마 들어가시이소~